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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in Milan

밀라노의 쇼윈도

2018. 03. 12

밀라노의 쇼윈도에는 이탈리아 특유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남훈 일러스트

WRITER 남훈(Alan Nam) : 패션 컨설턴트이자 남성 편집숍 ALAN’S의 오너. 직업상 전세계 패션 도시들의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다.

밀라노 사진
밀라노 사진

파리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또 다른 패션의 성지는 밀라노다.

두오모 성당과 트램 사이로 세계 패션에 깊은 족적을 남긴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라벨을 단 브랜드 쇼룸들이 군집해 있고, 사진에서나 보던 셀러브리티들이 패션쇼에 실제로 출몰하는 패션 위크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다만 느리게 숙성되는 피렌체식 클래식보단 빠르게 진화하는 트렌드와 컨템퍼러리의 세상이다. 옆 카페에 백발의 미스터 아르마니가 홍차를 마시고, 저녁을 마친 후 들른 어느 클럽에선 늘씬한 티셔츠를 입은 스테파노 가바나가 음악을 틀고 있는 곳. 그래서 로마 제국과 르네상스 같은 이탈리아 고유의 역사보다는 뉴욕이나 도쿄 같은 현대적 느낌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밀라노 사진
밀라노 사진

피렌체나 런던에서 자주 보는 클래식 남성 브랜드가 많지 않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도시보다 이곳 남자들은 멋지고 여인들은 섹시하다. 잘 재단된 슈트를 말쑥하게 입은 신사와 등이 깊게 파인 호피 무늬 원피스를 무심하게 걸친 여인이 거리에 공존하고, 쇼윈도 앞에선 남녀노소 모두 한참 넋을 잃은 채 시간을 보내며, 타인의 멋진 옷에 대한 칭찬은 처음 본 사이에서도 그야말로 거침없다. ‘와 멋진데, 그거 어디서 샀어요?’ 이건 남성복이 시작된 런던에서도, 여성복이 만개한 파리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모습이다. 정치나 사회 시스템의 부정적 평판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란 국가의 패션이 부상한 것은 그처럼 일상적으로 패션을 즐기고 적극적으로 데일리 룩을 업데이트하며 또 그 에너지를 통해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 때문이다.

밀라노 사진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 사람들의 힘은 즐긴다는 데서 나온다. 즉, 영국 사람들처럼 전통이나 규정이기 때문에 혹은 아시아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옷차림을 선택하기보단, 스스로 좋아하고 그럼으로써 더욱 멋있어진 자신을 기뻐한다. 개인은 부자고 국가는 가난하다고 야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안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당당하고 멋들어진 모습에 대한 질투도 분명 있다. 이번에는 밀라노의 매장들과 쇼윈도를 포착한 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Dolce & Gabbana

Dolce & Gabbana 사진
Dolce & Gabbana 사진
Dolce & Gabbana 사진

록스타들과 디자이너들이 좋아하던 브랜드, 유머 센스와 글램 룩의 선구자였던 돌체앤가바나는 트렌디한 의상들도 크루아상처럼 여리지 않고 퀄리티 있게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브랜드다. 이들의 전성기는 1993년 마돈나가 앨범 의 세계 투어 당시 돌체앤가바나 의상을 입었을 때가 아니었을까. 이후에도 비욘세, 카일리 미노그, 휘트니 휴스턴의 의상을 제작했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열광하는 축구나 도미니코 돌체의 고향인 시칠리아를 콘셉트로 한 옷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다만 시칠리아에 대한 사랑이 너무 넘쳐서 조금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카드를 모티프로 한 이들의 윈도는 여전히 즐겁다. 특히 밀라노에는 돌체앤가바나 바버숍도 있으니 남부 이탈리아 남자식으로 한번 커트(50유로)를 시도해보시길.

Kiton

Kiton 사진
Kiton 사진

체사레 아톨리니, 브리오니와 함께 최고급 핸드메이드 남성 슈트 브랜드의 삼두마차인 키톤. 미국 상류층이 좋아했던 로마의 브리오니와도 결이 다르고, 같은 나폴리 출신으로 비교하자면 아톨리니는 영국적인 감성의 전통과 진지함을 고수하고, 키톤은 나폴리 특유의 화려한 컬러를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발산하는 스타일이다. 아무래도 초고가이고, 일상적으로 입을 옷이 아니어서인지 대담하게 슈트까지 캐시미어로 만들어내고, 재킷들의 컬러도 화려한 편이다. 딱딱한 도시풍보다 낭만적인 해변풍의 슈트와 재킷을 어떻게 코디하면 좋을지 궁금하다면 키톤의 룩북이나 윈도를 보시라.

Zilli

Zilli 사진

아무래도 남성복은 이탈리아가 과점한 상태이지만, 럭셔리 제국 프랑스 출신의 남성 브랜드들도 컬러나 디테일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특히 프랑스의 질리는 뚜렷한 컬러의 가죽 의류, 악어가죽 액세서리, 화려한 프린트 등이 특징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부자들의 관심을 끄는 브랜드다. 물론 지갑은 두둑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지만 독특한 스타일의 럭셔리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스테파노 리치와 함께 질리가 있다.

Hogan

Hogan 사진
Hogan 사진

드라이빙 슈즈로 유명한 토즈 그룹의 토즈 자매품 호간은 잔뜩 힘을 준 난해한 디자인보다는 도시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실용성으로 승부하는 브랜드다. 편안한 실용을 추구하는 시대의 진화에 맞추어 1986년 등장한 호간은 패셔너블한 스니커즈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데, 안에 두툼한 쿠션을 깔아 누구나 몇 센티미터는 키가 커 보이는 장점까지 갖추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존 롭, 산토니, 맥나니 등 클래식 슈즈 브랜드부터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까지 모두 키 아이템으로 다룰 정도로 스니커즈가 보편화된 요즘도 호간은 끊임없이 진화화면서 나름의 위치를 훌륭하게 지키고 있다. 특히 곱게 재단된 블레이저나 터프한 가죽 블루종 모두에 어울린다는 점이 호간의 최대 미덕.

Gucci

Gucci 사진
Gucci 사진

수없이 명멸하는 패션 브랜드들의 스토리를 하나의 드라마로 본다면 구찌는 지금 이 시대, 전 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대박 드라마라 하겠다. 톰 포드가 떠난 이후 어딘지 쓸쓸하게 보였던 구찌의 모습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등장 이후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모두 구매할 게 많은, 구매하고 싶은 브랜드로 휙 변신한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처럼 로고를 숨기는 게 새로운 트렌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찌는 대놓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여러 로고와 동물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비튼다.

Gucci 사진
Gucci 사진

여성들을 위한 가방 시리즈야 워낙 다양했는데, 남성 고객이 빈티지스러운 원단을 사용한 재킷과 셔츠, 위트 있는 디자인의 구두와 가방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구찌의 폭발적인 성장 비결이라 하겠다. 클래식 슈트를 즐겨 입는 나도 여러 아이템들을 구입할 정도니까. 아, 뱀이나 벌, 호랑이와 고양이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표현한 브랜드가 있었던가.

Versace

Versace 사진
Versace 사진

패션은 우리가 매일 입는 실용적인 옷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역사가 발전했듯,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예술 영역에 속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추구, 남녀를 이어주는 관능, 아 이런 소재도 옷으로 만들 수 있네 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 파티에서 필요한 화려한 이브닝드레스 등 패션이 우리 삶에 주는 무형의 가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베르사체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브랜드다. 언젠가 입을 날이 오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우리 앞에 서 있는.

Louis Vuitton

Louis Vuitton 사진
Louis Vuitton 사진

작년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관세청이 적발한 ‘짝퉁’ 중 가장 많이 적발된 상표에 ‘루이비통’과 ‘롤렉스’가 이름을 올렸다. 루이비통은 2080억원어치가 밀수되다 적발돼 가장 많았고 롤렉스도 1951억원을 기록했다. 까르띠에(1467억원), 샤넬(1446억원), 버버리(924억원), 구찌(748억원), 아르마니(458억원) 등의 브랜드가 뒤를 이으며 짝퉁 시장 인기 브랜드층을 형성했다. 이런 사실은 루이비통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증거도 되지만, 럭셔리의 본질적 의미에서 본다면 너무 대중화되지 않았는가 싶은 우려도 든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진리도 다시금 새겨보게 되고, 또 루이비통처럼 대단한 브랜드를 일구어내는 프랑스의 힘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만 루이비통의 재기 발랄한 윈도는 언제나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번에는 귀여운 강아지들.

Trussardi

Trussardi 사진
Trussardi 사진

트루사르디는 1910년, 단테 트루사르디가 이탈리아 베르가모에서 가죽 권총집과 장갑을 만드는 가죽 공방으로 시작한 브랜드다. 지금은 의류에서 향수, 시계, 언더웨어, 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인을 갖춘 토털 패션 하우스고, 밀라노 라 스칼라 앞에 거대한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만큼은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지고 밀라노에 갈 때마다 둘러본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제품 말고, 희소성 있는 뭔가를 갖고 싶은 게 쇼핑의 묘미이기도 하니까. 참고로 트루사르디의 포멀 라인은 라르디니에서 생산한다. 소비자의 취향이 까다로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그만큼 디자인과 품질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니, 트루사르디의 한국 시장 진출도 기대해본다.

Valextra

Valextra 사진
Valextra 사진

이탈리아가 에르메스의 경쟁 상대로 생각할 정도로 자부심 높은 브랜드 발렉스트라. 1937년에 설립됐으니 역사도 꽤 오래되었는데, 난해한 디자인이나 급진적인 트렌드 없이 담백하고 심플한 가죽 제품만으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탈리아어로 슈트케이스를 뜻하는 ‘Valigia’와 ‘Extra’를 합친 이름이고, 오직 가죽만 고집하는 ‘가죽 하우스’로서 정체성이 뚜렷하다. 가방이나 액세서리의 외관에는 로고가 보이지 않지만, 퀄리티 높은 가죽이나 간소한 디자인에서 그들만의 이미지가 충분히 느껴진다. 10년 전에 산 발렉스트라의 브리프케이스를 아직도 잘 쓰고 있다는 감상과 함께 매장을 들렀더니 여기에도 강아지가 있네.

E. Marinella

E. Marinella 사진
E. Marinella 사진

유난히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에르메스와 페라가모 넥타이도 꽤 좋은 선물이지만, 넥타이 품질과 역사로 유명한 브랜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영국의 드레익스, 피렌체의 타이유어타이, 그리고 나폴리의 마리넬라라고 생각한다. 확실리 마리넬라 타이는 직접 매보면 매듭이 강하게 유지되는 느낌인데, 앞으로 타이는 컬러보다는 매듭을 기준으로 선택해보면 어떨까.

Pal Zileri

Pal Zileri 사진
Pal Zileri 사진

겉으로 보기엔 큰 차별점이 없는 것 같지만, 이탈리아 슈트 브랜드들은 나름 특징을 가지고 진화하면서 다양한 소비자들을 만난다. 전통적인 중장년층을 위한 보수적인 옷이었던 빨질레리도 아르마니 출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맞으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윈도에 있는 가벼운 소재의 캐주얼 재킷, 무채색 니트, 그리고 스니커즈를 보면 과연 내가 알던 그 빨질레리가 맞나 싶다. 한국 시장에선 라이선스로 제작되기 때문에 이탈리아 현지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겠지만, 아버지 옷에서 오빠 옷으로 진화 중인 빨질레리의 변화에 응원을 보낸다.

Rolex

Rolex 사진

롤렉스의 장점은 시계를 잘 아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 굉장히 좋은 시계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롤렉스는 빈티지 시장에서도 강력한 파워를 발휘한다.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투자 가치도 꽤 있는 롤렉스는 최근 디자인이 좀 더 화려해지고 있는데, 심플한 스타일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1970년대 빈티지도 좋은 옵션일 테다.

Brunello Cucinelli

Brunello Cucinelli 사진
Brunello Cucinelli 사진

럭셔리 + 캐주얼을 표방한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로로피아나가 점유하던 공간을 성공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스웨이드나 캐시미어 같은 고급 소재들을 잘 다루면서 너무 강하지 않은 컬러들을 사용해 여러 시즌의 옷들을 같이 입어도 괜찮도록 만들어준다. 원래 아르마니가 잘했던 일인데 그러고 보면 패션업계 역시 영원한 황제는 없고 언제나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는 드라마 같다.

Hermes

Hermes 사진

에르메스는 럭셔리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교과서 같다. 정제된 컬러, 품위 있는 디자인, 뛰어난 품질, 심플한 제품. 강조하고 싶은 컬러를 확실하게 밀기도 하고, 변치 않는 시그너처 제품들은 언제나 다양하게 구비한다. 게다가 윈도에 배치하는 디스플레이 소품들도 한결같이 고급스럽다. 그래서 볼 때마다 내 지갑을 마르게 하는 에르메스의 유혹을 피하려 멀리 도망가보기도 하지만, 어느새 나는 다시 봄에 어울리는 가벼운 태슬이 달린 블랙 로퍼를 신어보고 있다.

Doriani

Doriani 사진

크루치아니, 드루모어, 말로, 발렌타인, 페델리. 모두 나름 한 가닥 하는 브랜드들이지만, 이탈리아 니트웨어 브랜드들은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니트는 삶의 수준이 충분히 향상된 곳에서 융성하는 아이템인데, 지금 패션업계를 먹여 살리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 혹은 아랍 소비자들은 확실하게 브랜드가 드러나는 디자이너 브랜드와 과시형 제품들에 더 열광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들이 다 사는 브랜드나 유명한 제품에 관심이 없는 분들,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원래 뛰어난 물건에 저절로 손이 가는 분이라면 이곳 도리아니를 가보시길.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인 데다 색감 좋은 재킷들이 아주 가득한 보물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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