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dy.

BLOG > ENTERTAINMENT

ENTERTAINMENT

The Black Beauty is Gone

오랜 음악 팬이 갖춰야 할 것들

2018. 02. 12

현재를 살아가는 오랜 음악 팬들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블루투스 스피커, 턴테이블 시스템, 그리고 20세기를 장식한 기타 한 대다.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Writer 신동헌 :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자동차 전문 블로거 ‘까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음반 가게에서 LP가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CD의 차가운 음질에 대해 개탄하곤 했다. 더 깨끗하고 더 편리하다며CD를 홍보하는 문구가 난무했지만, 음악가의 숨결과 악기에 닿는 손길까지 재생하는 건 LP에 비해 분명 부족해 보였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필수였던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음질에 까다로운 친구들은 CD 뒷면에 새긴 코드를 보면서 녹음과 마스터링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했는지 따지면서 구입 여부를 결정하기도 했다. 게다가 CD 속지는 너무 작아서 아트워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거나 더블 앨범을 펼칠 때의 ‘맛’이 사라져서 음악 들을 맛이 나지 않는다는 불만도 많았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자동차에서 CD플레이어조차 사라지고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오롯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스트리밍 시대가 됐다. 앨범 속지를 찬찬히 둘러본 지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 유명 사진가가 찍고 유명 작가가 쓴 글이 실리는 종이 잡지가 XX맘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비키니 사진에 밀려 사라져가는 마당에 ‘속지가 없어서 음원 스트리밍이 싫다’고 주장해봤자 지하철에서 불지옥이 온다며 선교하는 사람들과 같은 취급을 받을 뿐이다. 메탈리카와 비틀스에 이어 지난해 말에는 스트리밍은 커녕 라이선스 생산마저 거부하던 ECM조차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팻 메스니 음악이 갑자기 듣고 싶을 때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기만 해도 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뭔가 한 시대가 사라져가는 기분만은 어쩔 수 없다.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그런 현재를 살아가는 음악 팬들에게는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연결할 블루투스 헤드폰과 스피커. 이것은 쌀밥과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 생활의 한 가지 요소나 다름없어졌다. 거실과 침실은 물론이고, 이제 욕실에 둘 방수 스피커도 필요하다. CD나 LP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기왕 스트리밍 시대에 산다면 만끽하는 게 낫지 않은가.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다음은 LP를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 시스템이다. 오랫동안 음악을 좋아해온 사람이 이제는 바이닐을 수집하지 않는다는 건, 그물에 걸린 고래가 숨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해놓고도 손 쓰지 않는 그린피스 회원이나 마찬가지다. LP를 모으고, 턴테이블에 걸고, 아트워크를 감상하는 건 지금 시대에는 음악을 감상한다기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의식에 가깝다. 의식은 때로는 번거롭지만, 그로 인해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톨릭 교회가 바보라서 2000년 넘게 미사를 보는 게 아니잖은가.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자, 그 정도는 당연히 하는 음악 팬이라면 마지막으로 기타를 한 대 사야 한다. 지난 2008년, 미국의 농업법(Farm Bill)에 포함된 레이시법(Lacey Act) 수정안에 따라 모든 식물과 나무 제품의 미국 통관이 까다로워졌다. 불법 산림 제품의 유통을 막기 위해서인데, 문제는 남미 아마존과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악기 제조용 목재가 대부분 불법으로 남획되었다는 점이다. 합법적으로 생산되는 나무는 이제 극도로 적어서, 기타 회사가 공장을 굴리는 데 충분한 수량을 공급받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깁슨은 2012년에 미국 법무부에 불법 목재 수입 혐의로 적발되어 벌금을 30만 달러 냈고, 26만 달러어치의 목재를 압수당했다. 재판까지 갔다면 법률 비용이 수백만 달러 소요됐을 테니 ‘깁슨’이라는 간판을 계속 내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윤기 반지르르 흐르는 흑단과 마호가니 무늬를 더 이상 몇백만원의 가격으로 즐길 수 없게 됐다.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1950년대 초 재즈 기타리스트 레스폴이 자신의 이름을 딴 기타를 깁슨과 함께 탄생시킨 이래 재즈와 블루스, 컨트리,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 하드록과 디스코, 그리고 헤비메탈과 힙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음악 장르가 이 기타로 녹음되었다. 그중에서도 마호가니로 보디와 네크를 만들고, 흑단으로 지판을 덮은 후 테두리에는 흰색과 검은색 수지를 일곱 겹 입힌 바인딩 장식을 넣고, 자개로 프렛을 표시한 ‘레스폴 커스텀’은 재즈용으로 제작되기 시작해 전 세계 수많은 기타리스트에게 사랑받으며 20세기 음악을 완성시킨 명기다.

‘레스폴 커스텀’은 ‘레스폴 스탠다드’와 여러 가지 면에서 구분되는데, 그중에서도 나뭇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흑단 지판은 큰 특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태 이후로 질 좋은 흑단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깁슨은 최근 레스폴 커스텀 지판을 ‘종이’로 만들고 있다. 흑단을 대체한 ‘리치라이트(Richlite)’ 소재는 종이에 레진을 섞어 굳힌 것인데, 깁슨의 주장에 따르면 음향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무 대신 종이를 굳혀 만든 기타라니 괜히 화장지까지 미워지려고 한다. LP가 CD로 바뀌던 때의 충격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The Black Beauty is Gone 저널 내지이미지

다행히 깁슨에서는 과거에 합법적으로 수급해둔 나무로 소량의 기타를 예전 방식 그대로 생산한다. ‘콜렉터스 초이스’는 유명한 기타 컬렉터가 소장한 악기를 복각하는 시리즈인데, 그 스물두 번째 작품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토미 콜레티(Tommy Colletti)의 1959년식 레스폴 커스텀이다. 이 기타는 뉴욕의 유명 악기점 CEO이자 기타 수집가인 토미가 소유한 악기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것 중 하나다. 금장 부품이 경년 변화로 벗겨진 흔적을 그대로 재현했고, 니트로셀룰로오스 래커로 처리한 표면이 갈라진 흔적까지 그대로다. 새 기타지만 벽에 걸어두면 20세기 음악의 역사를 함께해온 것처럼 보인다. 기타를 칠 수 있건 없건 상관없이, 음악에 애정이 있거나 벽에 뭔가 걸어둘 게 필요하다면 이것은 지금 사둬야 한다. 어쩌면 나중에는 악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9199달러라는 가격은 차라리 저렴한 편인지도 모른다.

맨위로 가기

History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