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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ari Turns 70

페라리의 고희

2017. 09. 20
신동헌 얼굴 일러스트

WRITER 신동헌 : 남성지 LEON의 전 편집장이자 칼럼니스트, 방송인. 자동차 전문 블로거 ‘까남’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페라리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페라리는 오래되고 희귀한 차들을 모아 70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행사를 열었다.
페라리 70주년 행사를 알리는 깃발이 높게 솟아있다

페라리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요즘에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로부터 칠십 번째 생일은 ‘고희’라고 하여 크게 축하 잔치를 열었다. 한자로 오래될 고(古), 드물 희(稀)를 쓰는데, ‘예전에는 칠십까지 사는 일이 드물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페라리는 오래되고, 희귀한 차들을 모아 70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행사를 열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70년을 넘긴 브랜드가 꽤 있지만, 20세기 초 유럽에는 나라마다 수십 수백 개의 자동차 회사가 경쟁을 벌였으니 아직까지 살아남은 브랜드들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사회에서 나이를 속이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 업계에도 간혹 창업주의 이전 회사까지 연혁에 포함시킨다든지, 사무실을 열어 열심히 투자자 모으던 시절까지 포함시키는 회사도 간혹 있다. 오래된 회사를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엔초 페라리의 어록이 붙어있는 빨간 벽 앞에 페라리가 놓여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자동차 회사 페라리는 나이를 많아 보이게 속이는 게 아니라 나이트클럽을 찾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이를 줄였다. 엔초 페라리가 알파로메오에서 독립해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회사를 설립한 건 1929년이었다. 흔히 ‘젠틀맨 드라이버’라고 불리는 돈 많은 부호, 귀족의 레이싱 참가를 돕는 회사였다. 그런데 차를 어찌나 잘 만지는지 성적이 아주 좋았고, 1933년에는 친정 알파로메오도 워크스 레이싱팀을 스쿠데리아 페라리에 맡겼다. 그러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페라리는 수요가 급증한 공작 기계와 비행기 부품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1940년에는 독자 모델 레이싱카로 밀레 밀리아에 처음 참가했다.

70주년 기념 모델 라 페라리 아페르타(왼쪽)와 함께 달리는 최초의 페라리125S 70주년 기념 모델 라 페라리 아페르타(왼쪽)와 함께 달리는 최초의 페라리 1947년형 125S

그럼 창립 연도로 삼고 있는 1947년은 어디서 기인하느냐 하면, 앞발을 쳐들고 있는 말 로고가 달린 첫 번째 시판 모델 125S를 출시한 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엔초 페라리는 이 차를 마지못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레이스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일반 도로를 느릿느릿 달리는 자동차 같은 건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레이싱팀에 소속된 부호들은 끊임없이 서킷을 오갈 때 탈 수 있는 ‘자가용’을 요구했고, 그렇게 나온 것이 125S였다.
등 떠밀려 만든 차치고는 화려했다. 대부분의 레이싱카가 직렬 8기통이던 시대에 1.5리터 V형 12기통 엔진을 실었고, 이 자동차가 꽤 빨리 달려 이후로 수년간 레이스에 투입돼 진짜 레이싱카들과 겨루기도 했다.

페라리는 등장부터 저 높은 벼랑 위에 핀 꽃이었다.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판매가 증가해 사세가 확장되는 비즈니스 형태가 아니라, 돈을 싸 들고 구애하는 유럽 귀족들에게 “정 그렇게 원한다면 만들어주지” 하는 고자세로 사업을 해왔다. 결과물은 언제나 완벽했고, 레이스 성적은 언제나 좋았으며, 설사 성적이 좋지 않을 때라도 가장 주목받았다. 그런 세월을 70년간 보내온 브랜드의 생일 파티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있나.

페라리 디노 206GT가 잔디위에 진열되어있다 엔초 페라리의 첫째 아들이자 불치병으로 사망한 디노 페라리의 이름을 딴 서브 브랜드 Dino 206GT
1984년의 페라리 GTO
클래식 페라리의 사이드미러를 확대한 사진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것 없었다. 그냥 과거의 멋진 차들을 세워놓고, 70주년 기념 신모델을 세워놓고, 의미 있는 차들을 경매에 부치는 행사를 열었을 뿐이다. 그런데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작은 도시 마라넬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행사가 열리는 주말 내내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멋진 차를 세워놓는다’라는 뜻은 다른 브랜드 같으면 역사에 남을 명차 몇 대를 고르는 일이겠지만, 페라리는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차가 훌륭하기 때문에 그냥 예전 모델을 전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페라리 F40 모델이 잔디위에 전시되어있는 사진 슈퍼카 붐 시대의 슈퍼히어로 F40. 40주년 기념 모델이자 엔초 페라리가 직접 승인한 마지막 스페셜 모델. 가장 인기있는 페라리 중 하나다.
1950년의 페라리 166MM 1950년의 Ferrari 166MM
1952년의 페라리 225S 1952년의 Ferrari 225S
Enzo Ferrari 2003 2003년의 Enzo Ferrari

1940년대에 생산된 레이싱카부터 이탈리아의 저명한 카로체리아가 만들어서 같은 차라도 모양이 모두 다른 1950년대의 아름다운 스포츠카들,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거대해진 데다 낭만적 요소까지 집어넣은 1960년대의 GT카들, ‘슈퍼카’ 하면 떠오르는 날렵한 쐐기형 디자인의 1970년대 스포츠카들,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영화와 포스터와 드라마에서 보며 침 흘렸던 1980년대의 명차들까지. 어느 하나 눈을 쉴 곳이 없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페라리 차의 전시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벽돌건물앞에 서있다
테스타로사 엔진을 본딴 마크 뉴슨 디자인의 70주년 기념 책자 독일 출판사 타셴에서는 페라리 70주년 기념 책자를 발간했다. 테스타로사 엔진을 본 딴 마크 뉴슨 디자인의 케이스 포함 250세트 한정으로 가격은 2만5000유로다.

요즘 자동차 회사들은 신모델과 콘셉트카를 전시하는 모터쇼 행사를 지양하고, 과거의 아름다운 차들을 전시하고 점수를 매겨 시상하는 콩쿠르 형태의 자동차 행사를 선호하는데, 페라리처럼 단독 브랜드로 콩쿠르가 가능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카를 지속적으로 생산한 브랜드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브랜드들은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이미지를 위해 스포츠카를 한두 종 생산하는데, 페라리는 생산하는 모든 차들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스포츠카임에도 출시 후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올라버리기까지 하니 브랜드 가치를 조사할 때마다 1위를 차지할 수밖에.

페라리 차 경매를 진행하고있는 남자

이날 행사의 백미는 클래식카 경매 전문회사 RM과 소더비가 함께한 페라리 경매 행사였다. 발매되자마자 매진된 70주년 기념 모델 라 페라리 아페르타 한 대가 이날 경매에 올랐는데, 830만 유로를 기록해 21세기에 생산된 차 중 가장 비싼 경매 낙찰가를 기록했다. 한정판 페라리는 과거부터 페라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단골 고객(?)에게 우선순위가 돌아가기 때문에 최신 페라리 한두 대 타본 정도로는 순서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웃돈을 주고라도 이런 경매에서 구입하는 수밖에 없다. 페라리의 전통적인 고객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귀족들에게 대개 우선순위를 두는데, 자금력이 막강한 중동이나 중국 부호에게 무분별하게 팔아버리면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458 아미 모델 피아트 그룹의 상속자이자 브랜드 프로모션 디렉터인 라포 엘칸이 타고 다니던 Ferrari 458 ‘아미(Army)’. 이 날 경매에 부쳐졌다.
페라리를 타고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남여

라 페라리 아페르타 이외에 경매에 출품된 차들은 모두 클래식 페라리. 말 그대로 오래되고 희귀한 ‘고희’들이다. 250GT SWB가 790만 유로에, 1958년산 250 GTO 카브리올레가 470만 유로에 낙찰됐고, 얼마 전 일본의 한 창고에서 방치된 채로 있다가 발견(!)된 알루미늄 보디의 365 GTB/4는 180만 유로에 낙찰됐다.

이날 클래식카 경매에서 얻은 수익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쓰이는데, 왜냐하면 페라리 오너에게 시세 차익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너들이 클래식카를 경매에 내놓는 이유는 다른 클래식카를 경험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가장 많고, 자식들이 차에 관심이 없어 더 아껴줄 사람에게 넘겨주기 위해서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신차일 때 구입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엄한 곳으로 보내느니 믿을 만한 차주에게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페라리를 구경하고있는 어린 남자아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서 곱지 않은 눈으로 페라리를 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자동차가 모터스포츠 현장에서 보여준 수많은 드라마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뜨거워지곤 한다. 지난 70여 년간 전 세계인의 박찬호이자 김연아이자, 마릴린 먼로이자 스칼렛 요한슨이었던 페라리는 아마 앞으로도 앞발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발길질하는 말처럼 전 세계 남자들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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